4편에서 나는
논산의 첫 사무직을 버티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퇴사했다.
짐을 차에 싣고
파주로 올라왔다.
5편은 그 다음 이야기다.
파주로 돌아오자마자 사고가 났고,
현장과 회사를 전전하며
현실 기준이 뼈에 박히는 구간이 이어진다.
이때 내 안에서
환상이 완전히 꺼졌다.
파주 복귀 직후, 사고로 멈춘 시간
파주로 이사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아는 형 집에 잠시 머물렀고,
오피스텔을 얻은 뒤
후유증 치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엔
또 멈췄다는 느낌이 강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움직이면
또 다른 변수가 튀어나오는 때였다.
내가 멈춘 게 아니라,
상황이 나를 멈춰 세우는 감각이었다.
인력사무소 통해 방수업체, 그리고 해고
가스안전공사 인턴을 하기 전,
인력사무소를 통해
파주의 방수업체에서 잠시 일했다.
크랙을 갈고,
실리콘으로 메꾸고,
화장실 방수를 칠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장에게 밉보였고
결국 잘렸다.
현장 일은
실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관계와 분위기라는 변수가
상상을 넘는 힘을 가진다는 걸
그때 다시 배웠다.
가스안전공사 인턴, 채용형이 아니었다
이후 가스안전공사에
인턴으로 지원해 인턴생활을 했다.
하지만 채용형 인턴이 아니었고,
내가 기대했던 채용 가산점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래도 다니면서
업무 흐름을 대략 파악했다.
사용시설안전관리자 과정을 듣고
가스안전관리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이 경험 이후,
공단과 공기업에 대한 환상은
내 안에서 전부 사라졌다.
동탄 오산 방산 배관설계 알바 부도 단기현장
동탄 삼성 현장, 중간에서 받은 스트레스
가스안전공사 이후
예전에 했던 전기 공사 일이 떠올랐고,
나는 동탄 삼성 현장으로 갔다.
경기인력개발원에서 만난 형과
같이 움직이게 됐다.
나는 경험이 있어 적응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형은
적응에 시간이 걸렸다.
팀과 어울리지 못한 형과
팀 사이에서 나는 중간이 됐고,
그 역할이 내게 스트레스로 쌓였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가운데에 끼여서 소모되지.
그 감각이 쌓이면서
나는 조직의 감정선이
일을 얼마나 흔드는지 체감했다.
방산업체, 외졌지만 배운 게 많았다
개발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형이
방산업체에 취업해 있었고,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자고 권했다.
면접을 보고
그곳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은 파주에서도 더 안쪽이라
도시와 너무 멀었고
사람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토요일 격주 근무는 있었지만
잔업수당은 별도로 나왔다.
조건만 보면
이상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정말 많은 일을 배웠고,
그 과정 자체가 꽤 재미있었다.
특히 탄창 쪽 업무에 깊게 들어가면서
내가 실제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 방산 제품 설계와 부품 구조를 접했다
• 방탄헬멧 방탄방패 방탄복 등 제품을 다뤘다
• 탄창 설계와 탄창 품질관리 업무를 맡았다
• 탄창 금형 설계 및 제작 외주를 담당했다
• 탄창 부품 제작 외주를 맡아 업체 대응을 했다
• 선반으로 간단 부품을 가공하기도 했다
• 직접 조립을 하며 설계와 제작의 간격을 봤다
• 품질부서에서 품질과 설계를 같이 경험했다
탄창 개발에 참여했던 일은
내게 꽤 인상 깊었고,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손으로 만지고,
도면으로 보고,
외주 업체와 주고받고,
결과를 품질로 확인하는 흐름이
하나로 연결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를 배웠다.
일은 꼭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장이 사고치고
수습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사회는 교과서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였다.
오산으로 이동, 삼성 평택 반도체 제어팀 1개월
방산업체 이후
나는 오산으로 가서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제어팀에서 일했다.
한 달 정도 일하니
다음 달에 만 원 올려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이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이 문제였다.
같은 기숙사를 쓰는 사람 중에
술 먹고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환경을 견딜 수가 없어서 관뒀다.
그때부터 나는
직장 자체보다도
숙소와 생활환경이
내가 버틸 수 있는지까지 좌우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아산 배관설계, 실수령 300의 함정
나는 다시 배관 쪽을 떠올렸고,
아산으로 배관설계를 하러 갔다.
실수령 300을 이야기했는데
실제로는 세전 300이었다.
관둘까 하다가도
일이 재미있어서 계속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회사에 정상 등록되지 않아
프리랜서처럼 처리됐고,
4대 보험도 안 되고
경력도 제대로 쌓이지 않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구조적으로는 손해가 컸다.
6개월 뒤 일이 없다, 나중에 부를게
결국 6개월 정도 일하다가
일이 없으니
일이 생기면 다시 부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세상은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천안에 원룸을 잡고
간단한 알바를 하며 지냈다.
음료수 공장 알바도 했고,
부품 가공 업체 일도 했다.
부품 가공 업체는 MCT 관리원으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사상을 시켰다.
아무도 안 하려는 일을
짬처리한 것 같았다.
다시 파주, 믹서기 회사 품질과 설계 그리고 부도
개발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생이
우리 회사에서 일해보자고 해서
나는 다시 파주로 갔다.
오피스텔을 얻고
믹서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믹서기 품질과 설계를 맡았다.
그 동생은 믹서기를 3D CAD로 설계하고 있었고,
예전에 내가 개발원에서
공부를 도와주었던 친구였다.
같이 일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반가웠다.
다니는 동안엔 재미있었다.
창원으로 출장도 갔다.
전기인증 관련 업무도 확인했고,
품질인증 문서도 봤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없어졌다.
그때 나는
노력보다 큰 변수가 있다는 걸 다시 봤다.
부도 이후, LG 공장 칸막이 보름
회사 부도 이후,
파주 LG 공장 칸막이 작업으로
보름 정도 일했다.
일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실제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이 있다는 말과
실제 일이 있다는 말이 다르다는 걸
그때 또 확인했다.
현장은 말이 먼저 오고,
일은 나중에 오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사람은
시간을 잃는다.
기숙사 생활 문제, 담배와 생활리듬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과는
기숙사를 같이 쓰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같이 배정된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잠도 거의 안 자고,
밤새 스마트폰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환경에서
같이 생활할 수가 없었고,
결국 그 일을 관뒀다.
직장 자체보다도
숙소와 생활환경 하나가
내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까지
좌우한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다시 배관 설계, 평택으로 오라는 연락
그 뒤 예전에 배관 설계를 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일이 있으니 평택으로 오라.
그래서 나는 다시
배관 설계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평택으로 갔다.
다음 6편에서는
평택 이후의 흐름을 이어서 적는다.
또 한 번의 현실이,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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