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진로 여정/시리즈 001: 생명을 증명하는 종이들

시리즈 1: 생존을 증명하는 종이들 — 6편: 평택 복귀 이후, 설계에서 현장으로 밀려나… As-Built 현실을 체득한 구간

dokwang82 2026. 2. 13. 09:50

5편 끝에서 나는 다시 평택으로 갔다.
좋아서 간 게 아니었다.
살아야 했고, 다시 굴러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또 현장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의 흐름은 비교적 단순하다.
설계를 하러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 현장으로 떠밀린다.
조건은 버티기 힘든 쪽으로 기울고, 몸이 먼저 흔들린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진짜 설계’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배운다.

마지막에 남는 건 As-Built라는 현실이다.
도면이 먼저가 아니라 시공이 먼저 진행된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야, 시공된 그대로 도면을 다시 그린다.
도면이 시작이 아니라 결과를 정리하는 문서가 되는 순간이다.

1) 평택 복귀, 방부터 해결했던 시작

평택에 다시 내려가자마자 가장 급한 건 방이었다.
돈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당장 발붙일 기반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을 거의 무료로 도와주다시피 하며 자리를 만들었다.
자리를 만들면 생활은 어떻게든 따라오리라 믿었다.

그렇게 방을 구했고, 사람도 다시 이어졌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흐름이 살아났고, 그 연결이 다음 일을 끌고 왔다.
나는 그렇게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2) 설계로 시작했지만, 현장으로 밀려난 이유

처음 내 역할은 분명 배관 설계였다.
하지만 현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이 있었다.
소장 쪽 세력이 강했고, 그 흐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밀려났다.
설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나는 설계에서 현장으로 옮겨졌다.
‘업무 변경’이라기보다 ‘규칙 변경’에 가까웠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자리였다.
그때부터 하루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3) 임금과 조건, 직무가 바뀌면 딜도 다시 해야 했다

설계직일 때는 덜 받아도 배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참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은 몸으로 버티는 영역이다.
야근이 쌓이면 체력이 먼저 무너진다.

그런데도 나는, 받아야 할 돈보다 적게 받는 구조로 들어가 있었다.
직무는 바뀌었는데 조건은 그대로였다.
지금 돌아보면 답은 단순하다.
그때 조건을 다시 잡고, 딜을 다시 했어야 했다.

4) 매일 야근, 몸이 무너지고 퇴사

현장에서는 야근이 거의 매일이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몸이 확실히 나빠졌다.
결국 나는 관뒀다.
더 버티면 크게 무너질 것 같았다.

그때 팀장님이 내게 말했다.
2년만 도와주면 팀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흔들릴 말이었지만, 나는 이미 바닥이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몸으로 무슨 2년이냐.’

5) 샾설계로 재진입, 그런데 며칠을 못 버텼다

관둔 뒤 예전에 같이 일하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현장에 샾설계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제안이었다.
이번엔 설계로 돌아가는구나, 기대도 했다.
그래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일을 제대로 못했고, 며칠을 못 버텼다.
집에까지 찾아와 설득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일할 수 없는 상태’였다.

5-1) 나중에야 보인 이유, 알력과 자료 공유 차단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유가 보였다.
설계자들 사이에 알력이 있었고, 그 알력 때문에 자료 공유가 막혔다.
나는 필요한 자료를 받지 못한 채로 일을 떠안았다.

그때의 나는 기본을 몰랐다.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정리하지 못했고, 어디에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요청이 막히면 어떤 절차로 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필요한 자료가 없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 어떤 자료가 꼭 필요한지

  • 그 자료를 누구에게, 어디로 요청해야 하는지

  • 요청이 막히면 어떤 절차로 다시 풀어야 하는지

  • 자료가 없어서 지금은 일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걸 어떻게 남기는지

그래서 나는 무너졌고, 그 실패는 빨랐다.
그건 단순한 능력 부족만이 아니라 구조 문제이기도 했다.
다만 그 구조를 읽는 눈이 없었던 건 내 몫이었다.

6) 설계를 접고, 다시 평택 배관 설치 현장으로

그렇게 설계를 접고, 나는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평택 반도체 공장 배관 설치 현장이었다.
나는 배관 설치와 구조물 설치를 하며 배웠다.
배관사의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실력 있는 형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현장 일을 제대로 배웠다.
나는 대신 현장에서 간단한 설계를 무료로 도왔다.
현장에 바로 먹히는 판단과 수정, 그게 내 역할이 됐다.
그때부터 설계 감각이 달라졌다.

7) 도면이 엉터리여도, 현장에서 바로 고쳐 시공했다

현장에는 엉터리 도면이 넘어오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도면을 바로 수정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시공으로 연결했다.
손이 움직여야 일이 앞으로 갔다.

이 경험은 나중에 큰 자산이 됐다.
설계 팀장이 되려면 현장이 왜 욕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도면이 어디에서 깨지는지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걸 책이 아니라 손으로 배웠다.

8) 약 3개월 뒤, 천안 삼성 SDI 설계 요청

이 현장에서 한 3개월 정도 일했다.
현장이 마무리될 즈음 다시 연락이 왔다.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하던 곳이었다.
천안 삼성 SDI 공장 설계를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다시 설계로 내려가는 흐름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준비했다.

9) 이번엔 딜을 했다, 설계 대신 현장팀장 자리

그때 같이 배관 일을 하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배관팀 팀장을 하고 싶어 했다.
나도 팀장을 목표로 했지만, 아직 완성형은 아니었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 형을 배관팀장으로 만든다

  • 나는 옆에서 새끼 팀장으로 배운다

  • 다음에 내가 팀장이 되는 길을 만든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설계를 도와줄 테니, 현장팀장 자리 한 곳을 달라.
그렇게 딜을 하고, 나는 천안으로 내려갔다.

10) 천안 생활, 고시텔 기숙사에서 버틴 시간

천안에 내려가자 고시텔에 방을 잡아줬다.
솔직히 열악했다.
그래도 나는 참고 일을 했다.
환경이 좋아야 일을 한다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일이 먼저였고, 일을 붙잡아야 다음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때는 버티는 게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버티는 방식도 실력이라는 걸 안다.

11) 배관 일 하러 왔는데, 설계가 계속 늘어났다

원래는 배관 일을 하러 간 흐름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배관만 한 게 아니었다.
덕트 설계도 맡았고, 입상 배관도 맡았다.
화장실 배관 설계까지 붙었다.

일이 주어지면 나는 그냥 다 했다.
‘주면 한다’는 방식으로 결과를 냈다.
그때는 그게 내 장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오래 못 간다.

12) 그땐 설계처럼 보였지만, 지금 보면 설계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내가 하는 게 설계처럼 보였다.
주변도 그렇게 굴러갔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엄밀히 설계가 아니었다.
그냥 ‘돌아가게 만드는 작업’에 가까웠다.

당시 현장에는 다른 기준이 있었다.
도면이 없어도 알아서 시공하는 일이 많았다.
시공 후에 시공한 대로 도면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구조가 있었다.

13) As-Built, 도면이 시작이 아니라 결과가 되는 순간

과거 공사 현장에서는 도면이 아예 없기도 했다.
있어도 부족하거나, 현장과 안 맞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현장은 도면 없이도 시공을 해버린다.
그리고 공사 뒤에 시공한 대로 도면을 다시 그린다.

도면이 시공의 시작점이 아니라, 결과 정리 문서가 된다.
나는 이 구간에서 그 현실을 체득했다.
이후의 나는 현장을 기준으로 도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다음 구간의 핵심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현장 실측을 바탕으로 다시 설계를 잡는 과정이 이어진다.
공정이 밀리고, 권한 없는 수정이 반복되며, 팀장 역할이 겹쳐 과부하로 번지는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붙잡고, 어디서 무너졌는지 더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