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에서 나는 “도면 없이 시공하고, 시공한 대로 도면을 그리는” As-Built 현실까지 경험했다.
7편은 그 다음이다.
천안에서 나는 한 단계 더 올라가 실측→재설계를 직접 해보며 설계를 몸에 붙였고,
공정 지연으로 다시 평택으로 돌아가서는
권한 없이 설계를 조금씩만 고치며 버티다가,
결국 팀장 역할을 조건부로 시작했지만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리는 구조’에서 과부하에 도달한다.
현장 실측 → 재설계: 내 손으로 확인하고 다시 그리는 방식
천안에서 나는 현장에 직접 가서 실측을 하고,
그 실측값을 바탕으로 설계를 다시 고쳐서 현장에 맞추는 방법을 익혔다.
도면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아는 것”과,
틀린 도면을 “현장 기준으로” 바로잡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나는 실측으로 진짜 치수를 확인하고,
그걸 기준으로 다시 그리며 설계를 현실에 붙이는 방식을 배웠다.
설계를 체계적으로 익힌 건 확실하다 — 나는 ‘특이한 길’로 배웠다
지금의 나는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그리고 설계를 체계적으로 익힌 건 분명하다.
다만 내 방식은 조금 특이했다.
보통은 설계팀에서 설계를 먼저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 다음에 현장을 경험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갔다.
현장에서 시공을 하고,
도면이 깨지는 걸 보고,
현장 실측으로 진짜 치수를 확인하고,
그 다음 재설계를 하면서,
설계를 ‘정답’이 아니라 ‘현장을 맞추는 도구’로 배웠다.
공사 지연 — 일이 끊기고, 다시 평택 현장으로 돌아가다
천안에서 공사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공정이 밀리면서 내가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평택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평택에서 본 현실 — 경험 없는 회사가 공사를 맡아 손해를 보고 있었다
평택 현장에 가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사를 맡은 회사가 경험이 없었고,
그 결과 현장은 말도 안 되게 손해를 보고 있었다.
사람은 계속 뽑고 있지만,
일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설계를 들여다보니 — 수정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설계를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수정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해결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권한이 없었고,
솔직히 다 맡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론을 이렇게 냈다.
“다 뒤집어엎는 건 못 한다.
하지만 현장팀이 일은 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
권한 없이 ‘조금씩’ 수정 — 현장팀이 일할 수 있게 길만 열어줬다
나는 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전체를 통째로 바로잡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씩 조금씩 수정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완성형 설계를 만든 게 아니라,
현장팀이 당장 시공 가능한 상태로 “길”만 열어주는 일이었다.
그 전에 설계를 맡은 사람 — 엉터리 작업, 그리고 해결하지 않는 사람들
그전에 설계를 맡은 사람이
할 줄도 모르면서 엉터리로 작업을 해놓아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가고 있었다.
나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조금씩’만 수정하고 있었다.
돈이 아까웠다.
“설계 팀장 한 명만 잘해도…”라는 생각
그 상황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설계 팀장 한 명만 잘해도
이런 상황까지는 안 왔을 텐데.”
사람을 더 뽑는 게 아니라,
방향을 잡고 기준을 세우고
설계를 정리해서 현장이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결론 — 현상설계가 아니라 ‘원설계’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는 현상설계(현장에서 수정하며 맞추는 설계)가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원설계 문제였다.
원설계에서 이미 잘못된 게 깔려 있었고,
그걸 현장에서 억지로 맞추다 보니 손해가 폭발하는 구조였다.
결국 건설회사가 그 책임을 뒤집어쓴 거였다.
그렇다고 “못 건드리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 설계 팀장이 있으면 해결하며 진행도 가능했다
물론,
현장 설계 팀장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원설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설계의 문제를 현장 상황에 맞게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우고,
수정안을 만들고,
승인/결정 루트를 타고,
현장팀이 시공 가능한 상태로 계속 공급하는 사람.
그 역할이 없었거나 기능하지 못했다는 게
현장을 더 크게 망가뜨렸다고 느꼈다.
설계 팀장 자리 제안, 그리고 내 선택 — “기계실이면 한다. 기계실만 하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에,
“설계 팀장 자리가 났는데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 왔다.
나는 다른 시공사에 현장 팀장으로 가기로 했다.
기존에 하던 배관 일은 재미가 없었다.
나는 기계실 설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말했다.
“기계실이면 한다.”
“기계실만 하겠다.”
기계실만 하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계실 일만으로도 일이 많았다.
여기에 다른 일까지 겹치면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팀을 꾸리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 경기인력개발원 친구들과 팀빌딩
그렇게 일을 하기로 했고,
팀을 꾸리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경기인력개발원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들도 불러
팀을 꾸려 일을 하기로 했다.
그때는 내가 현실을 잘 몰랐다.
내가 배관 설계를 잘 모르던 상황에서도
혼자서 배워 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팀원들을 내가 가르치면
쉽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시작하니 ‘기계실만’은 사라졌다 — 일이 자꾸 다른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기계실 일을 하기보다는 자꾸 다른 일을 주웠다.
- 배관 서포트 구조물 설계
- 폐수 배관
- 가설 구조물
- 프로세스 배관
- 그리고 품질/공사 관련 다른 일들까지
그냥 기계실 배관 설계를 하러 간 나에게
거의 대부분의 일이 집중적으로 왔다.
각각의 일들은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에 모든 일이 쏟아지자 할 수가 없었다.
팀이 있어도 결국 내가 다 봐야 했다 — 전원 초보, 하나부터 열까지 검토/수정
팀원들도 전부 초보였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검토하고,
진행하고,
수정해야 했다.
업무가 나뉘는 게 아니라
내 책임만 폭발했다.
심지어 문서 번호조차 틀렸다 — 기본부터 다시 잡아야 했다
심지어 문서 번호조차 틀려 있었다.
그것도 일일이 검토하고 수정해야 했다.
문서 번호가 틀리면
도면이 어디에 속하는지 흐려지고,
최신본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고,
현장은 더 쉽게 꼬인다.
나는 설계를 하는 동시에
문서 관리까지 떠안는 상태가 됐다.
결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각각의 일들은 내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일이 쏟아졌고,
팀원들의 결과물도 내가 전부 검토해야 했고,
문서 체계까지 무너진 상태였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이 구간에서 나는
‘실력’이 아니라 ‘구조’가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걸
가장 선명하게 체감했다.
7편 마무리
여기까지가 7편이다.
이후 이야기(과부하가 실제로 어떻게 터졌는지,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팀장으로서 처음 맞은 현실의 벽과 그 다음 선택)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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